산소망 예수


예수님의 부활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다

인간의 한계인 죽음으로부터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죽음의 세력에 얽매여 그 죽음을 두려워 하며 산다

이 죽음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람은 이세상에 아무도 없다

인간의 모든 지혜를 총동원 하고  인간의 모든 능력을 다 합쳐도

죽음을 이길수도 없고  죽음에서 벗어 날수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끝이라 생각하여 두려워 하고

죽음을 통한 이별을 슬퍼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히 부활 하셨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 예수를 부활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이들이심을 입증 하셨고  

예님은  죽은자 가운데 부활 하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을 증명하셨다

 

"로마서1:3에 예수님은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되셨다고 말씀 하고 있다"

 

여기서 인정 되셨다는 뜻은 원래(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즉 영원전부터 함께 하셨던 본래의 아버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셨다가 그 오시기 전의 자리로 복귀 하신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15:20)" 

 

첫 열매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최초의 사람이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도 주님과 똑같은 부활에 이른다는 말이다

정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이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소망을 가리켜 살아있는 소망이라고 했다 (벧전1:3)" 

 

나사로가 죽었을때 마리이와 마르다는 예수님을 향하여 원망을 한다

에수님 !! 당신이 여기 계셨더면 우리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겟고 무릇 살아서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4-25)

마지막날 부활의 때는 그러할줄 내가 믿나이다 

 

그녀는 예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부활을 "마지막 날  마지막 때" 에나 있게될 부활로 믿는 신앙 이었으며

지금 여기서 누리는 소망 없는 믿음의 수준 이었던 것이다  

진정한 부활 신앙은 마지막 날 마지막 때에 일어날 부활을 믿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숨쉬고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부활의 부님을 만나고 경험하며 그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살아있는 산 소망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그랬다 

아들 이삭을 하나님이 잡아 바치라고 했을때 

그는 아들을 죽여도 하나님이 살리실줄 믿었다 

나는 가끔씩 질문을 던진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아 바치기까지 고민하고 괴로워 했겠는가 괴로워 하지 않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창난 고뇌를 했을것 이라고 말한다 

많은 목사님들도 그렇게 설교를 하신다 

그런데 아들을 죽여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줄을 믿는 믿음이 사실이라면 

무엇이 힘들고 괴로웠겟는가? 

모리아 산까지 함께 동행한 종들에게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들과 하나님께 경배하고 돌아오리라...

아브라함의 이 고백에서 그는 부활의 주님을 얼마나 확실히 믿고 있는지 알수 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가졌던 "산 소망" 이었던 것이다

거지 나사로의 초라한 모습은 상적으로 볼때 얼마나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인가?

그러나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영원한 삶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고

이세상의 삶이 끝이 아니라 주님 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갈 부활의 아침을 기다린 사람 이었다

그의 마음에 품은 부활 신앙 그가 이땅에서 아무리 비참해도 자신은 비참한 사람이 아닌

살아 있는 소망의 사람 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큰 소리치고 잘난체 하다가도 죽음이 눈앞에 다다르면 그 죽음을 무서워 하고 그 죽음을 두려워 한다

한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 나오고  똑똑하고 지혜로운 처제가 그제 유방암 수술을 했다 

남편도 큰 신문사 기자로 꽤  높은 자리에까지 오라서 그야말로 잘나가는 사람들 이었다

유방암 수술을 앞둔 처제는 담대한척 했지만 두려워 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까지 전교에서 1등 아니면 2등만 하며 수재 소리를 듣던 사람들 이지만

인간의 한계인 죽음 앞에서 두려움은 어쩔수 없는 것이다

수술 하는 날

언니 언니가 나와 함께 있어줌 안될까? 

그래서 집사람이 하루종일 병실을 지켰다  

수술 하기전 나는 처재에게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를 들어 복음을 전했다

자신이 다 잘나서 큰 부농이 된것으로 착각하고 큰 창고를 짓고 재물을 쌓으려는 농부...

그는 자신이 주인이다

무엇이든 자신이 잘나서 부농이 된 것으로 착각을했다 

해와 바람 비와 구름 적당한 온도와 습도 이런 것이 없이 농사를 지을수 있는가 ?

그 자연 만물을 주관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시다 

이웃의 섬김과 도움이 없이 혼자서 어떻게 농사를 짓는가? 

이웃들에 대한 감사도 나눔의 삶도 없는 철처히 자기 중심의 사람 이었다

땅속에서 꿈틀대고 기어다니던 굼뱅이가 하늘을 나는 여름 매미가 되는 모습에서도

부활의 신비가 보인다

땅에 떨어진 한알의 밀알이 죽을때 그 생명에서 파란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꼿이 피고 열매 맺는

부활의 신비가 있음을 성경은 증언한다 (고전 15:36-38)

나는 처제가 진심으로 주님을 만나서 이부활의 소망으로 살기를 기도하고 있다  

 

만일 정말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면

죽기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인데  이땅에 무엇에 소망을 둘수가 있겠는가? 

이땅에 무엇에 소망을 두고 살아간들  결국 죽음에 이르를때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꿈 이었는가를 알게 될것을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 가겠는가?

부활 .....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 안에서 이미 이 부활을 경험하고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소망" 이다

주님과 영원한 삶을 시작할 소망의 시간이다

그래서 이땅에서 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부활의 생명을 누리는 사람들에게는 큰 기쁨이 있으며

참 평안이 있고 진정한 자유가 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죽여도 살리실줄 믿고 아들을 드렸을때 

여화와 이레로 모든것을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어떤 모습 이었겠는가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수양으로 번제하며 얼마나 기뻣을까 ?

얼마나 감격 했을까?

살아 계신주 나의 참된 소망........

이런 찬양이 그당시 있었다면 목이 터져라 불렀겠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얼마나 감격 했을까?

아 ~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도 죽일수 있는 저 신앙이 부활 신앙 이구나

저렇게 믿는 것이구나

저렇게 의지 하는 것이구나

나를 죽이기까지 순종하신 이유가 바로 저 "부활 신앙" 때문 이었구나 

그래서 그애비에 그 아들인 것이다

일생에 매여 죽음을 두려워 하고 죽음에 종노를 하는 사람들을 

그 죽음으로 부터 해방시키시고 놓아 주시려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히2:15) 

그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이 이미 내안에 부활해 계신다 

나는 이미 죽어도 다시살 생명을 살고 있는 것이며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미미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쁘고 행복하다 

이 산소망 아래서의 진정한 자유가 내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 산 소망의 기쁨이 내안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부활 주일은 없다

매일 매일이 부활의 생명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죽기를 무서워 함으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히2:15)"

 

"찬송 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자 가운데서 부활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 "

 

 

무엇이 변치 않아  내 소망이 되며

무엇이 한결 같아 내 삶을  품으리

그 누가 날 만족케해 내영이 쉬며

그  누굴 기다려  내 영이 기쁘리 

십자가 십자가 그 그늘아래 

내 소망이 있네 

십자가 십자가 그 그늘아래 

내 생명이 있네 

주~여 내영을 고요케 하사 

십자가를 품게 하시며

주~여 내영을 잠잠케 하사

십자가로 만족케 하소서

 

나는 오늘 아침 이 찬양을 가슴 깊은 고백으로 부른다

이 찬양을 만들고 부른  은아 자매가 

너무 귀하다는 생각을 하며 

몇번이고 반복해서 이 찬양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