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고린도 전서3:10-15
제목: 생명의 터 예수 그리스도
서론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집을 지을 “집터”다.
아무데나 대충 집을 짓거나 아무렇게나 집을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할 때 옛날 고성들을 많이 보았다.
그 성들은
하나같이 높은 산 바위 위에 짓거나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높은 곳에 성을 지었다.
만약에 성을 낮은 곳에 지을 경우 성 주변에 큰 웅덩이를 만들어서 적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어떤 성은 그냥 보통 평범한 집이 아니라 견고한 요새로 불리기도 한다.
중국의만리장성은 지금도 인공 위성 에서도 선명하게 사진 찍을 수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다.
그 위에는 트럭 세대가 나란히 올라다닐 만큼 견고하다.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건축물은 견고하기만 하다.
그 이유는 산위 단단한 바위 위에 지은 성벽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진이 많은 나라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건물을 지을 때 지진에 대비하여 최신 건축공학을 도입하여
강진이 와도 끄떡없는 견고한 집을 짓는다.
불과 2-3년 전 이란에서 지진이 일어나 수십 만명이 죽은 참사가 일어났다.
그 이유는 집을 흙으로 대충 지었기 때문이다.
70년대 초 마포에 있는 와우 아파트가 무너져 수백 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다.
가수 조용남이가
‘신고산이 우르르 화물차 떠나는 소리에
이 노래를 와우 아파트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에~’로 노래했다가 감옥에 갔다.
무너진 삼풍 아파트, 무너진 성수 대교는 모두 다 부실한 기초위에 엉터리로 건축했기 때문에 대형사고가 난 것이고 대형 참사를 불러온 것이다.
그 만큼 집을 지을 때나 성을 쌓을 때 또 다리를 놓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터 위에 집을 짓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 라고 부른다.
여기서 “기“ 자는 한문으로 "터" 기자를 쓴다.
우리가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것도 중요하고 나름대로 영적인 체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신앙 생활 하고 있는 “터” 가 잘못 되었다면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집을 지을 수 없다.
제대로 된 터 위에 집을 짓지 아니하면 곧 쉽게 무너져 영적인 대형 사고를 일으키게 된다.
본론: 우리가 지을 신앙의 바른 터
1. 생명의 터 예수그리스도 (고전3:11)
우리 신앙의 시작도 예수, 끝도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터 위에 집을 짓지 않는 신앙은 모두가 잘못된 신앙이며
곧 무너질 허술한 신앙의 집들이다.
2,예수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a. 예수님을 만난 사실 위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만큼 인간은 죄로 어두워져 있다.
정말 예수님을 만나면 그동안 내가 얼마나 허망한 삶을 살면서
헛된 것에 인생을 낭비하며 살아 왔는가가 보이기 시작하여
그 잘못된 삶에서 돌이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참된 회개이며 새사람으로서의 시작이다.
만나야 사귐이 시작 되고 사귐이 있어야 동행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b.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만남이 분명해도 계속 사귐이 없으면
점점 더러운 것들이 마음에 채워져 마침내 무너져 내리고 만다.
성경에 예수님이 한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그 귀신을 내쫓아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셨다.
그 사람에게서 쫓겨난 귀신이
쉴 곳을 찾아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다시 그 사람에게 와 보니 깨끗이 소제만 되어 있지 빈집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가서 자기 친구들인 더 악한 귀신을 데리고 들어와서
그 집이 처음보다 나중 형편이 더 형편 없어 졌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눅11:24-26, 마12:45).
주님 앞에서 회개 하고 주님을 만나서 깨끗해진 마음이 전부가 아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채워져야 한다.
새집을 짓고 깨끗이 청소해 놓은 후 빈집 그대로 나두어 보라.
창문도 너덜거리고 거미줄 온갖 벌레, 쥐들이 물어다 놓은
온갖 쓰레기들,..
집이 망가져 버린다. 지속적으로 주님을 어떻게 만날까?
말씀 안에서 주님을 만난다. 말씀이 하나님이고 말씀이 예수님이시며 말씀이 진리이요,
말씀이 빛이요, 말씀이 생명이다(마7:22-29).
성경을 펴고 말씀을 매일 들어라.
그리고
그 성경대로 살려고 있는 힘을 다 기울여라.
그러면 내가 도저히 그 말씀대로 살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이 그 말씀 앞에서 보이기 시작하고
그때 진짜 기도를 하게 된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나를 긍휼이 여겨주옵소서. '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말씀대로 살 수없는 사람인 것을 고백합니다.
이 말씀을 지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시작할 때
그 말씀을 지키게 되고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하며
경험되기 시작 하고 주님과의 동행이 일어난다.
아주 실질적인 동행이 ......
(신명기 30:11-14)
멀씀이 네 입에 있고 마음에 있을 때까지 심히 가까히 하지 않는
신앙은 모두 모래위에 집은 집이다.
어리석은 믿음이다.
엉터리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말씀 안에서 계속 삶이 변하고 인격이 변하지도 않는 데
주님을 잘 아는 사람처럼 목을 늘어뜨리는 교만하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도 눈에 보인다.
c. 다른 터는 없다
고린도 교인들은 영적으로 엉터리로 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중에 하나가 사람을 쫓아서 당을 짓는 짓거리들을 했다 (고전3:5-9) (고전1:10-12).
고전 3:11-16 -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건물은 성전이 아니다.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이다.
우리의 마음이 성전이다.
사람을 쫓아서 당을 짓고 스승을 많이 두는 행위는 자기 귀를 즐겁게 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것이지 정말 교회를 사랑하는 행위가 아니다(딤후4:3).
왜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터를 기웃거리나?
올바르게 주님 위에 집을 짓지 않기 때문에 사사로운 욕심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결론
예수님을 만났는가? 나는 계속 주님을 만나고 있는가?
말씀 안에서 항상 주님을 만나고 있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리까지 가고 있는가?
주님 외에 다른 것을 찾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신앙의 "터" 인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내가 만난 주님과 끝없는 교제를 시작해야 한다.
내 마음에 말씀으로 채우고 성령으로 채워질 때까지
끝없이 내 영혼을 가꾸고 돌봐야 한다.
모든 능력과 지혜 변화의 삶은 거기서 부터 시작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